"집에서 즐기는 한식의 진수, 무쇠판 장어구이"
해외에서 살다 보면, 먹고 싶은 것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요즘은 현지에서도 어느 정도 한국 음식재료와 현지 한국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수는 있지만, 그래도 고국에 가야만 제대로 맛볼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많다. 특히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과 신선한 횟감은 한국에서나 그 진미를 즐길 수 있다. 밴쿠버에도 일부 한인 식당에서 회를 판매하기는 하지만, 냉동 제품이 대부분이고 종류도 제한적이라 아쉬운 마음을 달래는 정도에 그친다. 가격도 만만치 않으니, 결국 한국행 비행기를 타야 마음껏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번 연말에는 아내 덕분에 예상치 못한 호사를 누렸다. 아내는 지인이 운영하는 스시집에서 재료 납품용으로 쓰이는 장어 한 박스를 가져왔다. 납품가로 구입했으니 가격도 저렴했고, 연말 가족 파티를 열고도 냉동고에 몇 팩이 남아 있을 정도로 넉넉했다.
냉동고에 남아 있는 장어를 이용해 아내와 둘이 근사한 저녁을 준비했다.
무쇠판을 약한 불에 달구었다.
냉동고에서 꺼낸 장어 한 팩은 딱 2인분으로 적당했다. 한 팩에 든 장어를 반으로 자르고 한국에서 가져온 무쇠판에 올려 굽기 시작했다. 사실 우리 집에는 한국에서 가져온 무쇠판이 두 개나 있다. 아내가 "이건 꼭 필요하다"라고 고집해서 가져온 것인데, 이런 날 제대로 빛을 발했다.
팩에 들어 있는 장어를 이등분으로 나누었다. 원래 꼬리 부분은 '정력에 좋다'는 속설 때문에 은근히 탐나지만, 굽는 사람입장에서 양심적으로 아내에게 양보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요리를 한 사람이 맛있는 부위를 차지하면 괜히 자기 욕심만 채운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아내도 처음엔 사양하더니 "꼬리는 원래 여자들이 먹는 게 더 효과가 좋아"라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아내의 말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그냥 기분 좋으라고 한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꼬리는 아내의 몫이 되었다.
무쇠판 위에 장어를 가지런히 올리고, 마늘도 같이 올려 약한 불로 은근하게 구웠다. 장어는 이미 익혀진 상태라 살짝 데우듯 굽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욕심을 부려 불맛을 내겠다며 도취 램프를 꺼낸 게 문제였다.
불의 강약 조절이 서툴러 장어 겉면이 시커멓게 타버렸다. 비주얼은 솔직히 엉망이었지만, 아내는 “보기 좋은 떡이 꼭 먹기 좋은 건 아니야”라며 웃으며 위로했다. 아내는 장어를 한 점 집어 먹더니 "맛은 살아 있네!"라고 해줘서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결과적으로 비싼 한국식당에서 먹는 장어구이와 맛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특히 우리 부부만의 공간에서 함께 굽고 먹는 즐거움은 그 어떤 고급 레스토랑도 줄 수 없는 특별함이었다.
연말의 특별한 장어 파티도 장어가 한몫하면서 마무리되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은 건, 완벽한 비주얼을 고집하지 않아도 좋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과정과 그 속에서 느끼는 행복이다. 물론, 다음에는 도취 램프 사용법을 좀 더 익혀야겠지만 말이다.
해외이든 한국이든 장어를 즐기고 싶다면, 식당에서 비싼 장어구이를 먹기보다는 포장된 장어구이를 추천하고 싶다. 저렴한 가격에 적당량을 구입해 집에서 무쇠판으로 구워 먹으면, 레스토랑 부럽지 않은 한 상이 차려진다. 맛있게 타버린(?) 장어 한 조각에 웃음이 더해지는 그런 즐거움은 돈으로 살 수 없는 오늘 밥상의 보너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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