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몰랐던 것들, 퇴직과 은퇴 사이, 삶은 계속된다

그땐 몰랐던 것들, 퇴직과 은퇴 사이, 삶은 계속된다

퇴직이 요즘 들어 부쩍 많은 사람들의 화두가 될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예전엔 퇴직은 그저 정년 즈음 되면 조용히 회사를 떠나고, 이후엔 은퇴라는 이름 아래 평온한 여생을 보내는 게 당연한 수순이라 여겼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우리를 ‘퇴직자’라는 이름 아래로 밀어내고 있다. 법정 나이도 되기 전인데, 이제 막 인생 2막을 준비하려던 시점인데, 퇴직인지 은퇴인지 헷갈릴 만큼 어중간한 나이에 사회의 무대에서 슬그머니 퇴장하게 된다. 엄격히 이야기하면 떠밀림이 맞다.

이제는 퇴직과 은퇴의 경계도, 시점도 명확하지 않다. 100세 인생 시대에 ‘정해진 나이’는 더 이상 의미 없다. 60세가 되어도, 70세가 되어도 은퇴라 단정 짓기엔 뭔가 어색한 시대다. 은퇴 후의 편안한 삶보다는 오히려 이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으로 나의 삶을 채워야 할까, 고민만 깊어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젊은 날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삶의 조건이라 믿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열심히 달렸고, 그 대열에 진입한 사람을 우리는 출세한 사람으로 인정해주는 분위기가 분명히 있었다. 하지만 그 노력의 보상은 어느 순간 찌그러진 우상이 되어 있었다. 베이비부머 세대도 모자라 이제는 제2의 베이비붐 세대까지 똑같은 길을 밟으며, 비슷한 좌절 앞에 놓이고 있다.

이론서에서 배운 퇴직 후 적응법, 노년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법 같은 방법론 글이나 서적은 넘쳐나지만 막상 삶 앞에 서면, 그 진리의 이론서는 허공만 맴돈다. 현실은 원론만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

게다가 요즘은 세상 자체가 낯설고, 때로는 무섭기까지 하다. 대한민국이,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캐나다가, 심지어는 미국까지도 낯설고 불안하게 느껴진다. 국가와 국가 간의 위협과 대립의 시대, 수출과 무역에 따라 하루아침에 흔들리는 기업들, 자국만 잘 살면 된다는 강대국의 논리 속에 우리는 점점 더 외롭고 고립되어 가고 있다.

팬데믹이 남긴 후유증은 깊다. 물가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수입은 늘 제자리다. 급여의 가치는 그대로인데, 물가는 고공행진을 이어간다. 이럴 때 필요한 건 결국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일 텐데, 일하고자 하는 의지와 상관없이 사회는 우리를 밀어내고 있다.

지금 우리는 누구나 이 시기를 건너는 중이다. 누구는 조용히, 누구는 억울하게, 누구는 막막하게. 그리고 나 역시, 그땐 몰랐던 퇴직 이후의 인생을 이제야 제대로 배우고 있는 중이다. 그때 조금이라도 알았더라면, 좀 더 유연하게 삶을 살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자꾸만 커져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