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응급실에서 보낸 일요일 저녁, 유리 깨짐 사고 그 후

캐나다 응급실에서 보낸 일요일 저녁, 유리 깨짐 사고 그 후

일요일 저녁, 베란다에서 간단한 수리를 하던 중이었다. 사다리 대신 가벼운 작업이라며 베란다 의자를 사용한 것이 화근이었다. 순간 의자의 천이 찢어지며 중심을 잃고 넘어졌고, 팔꿈치가 대형 거실 유리에 그대로 부딪쳤다. ‘우장창’ 하는 굉음과 함께 유리는 산산이 부서졌고, 붉은 피가 바닥에 빠르게 번져갔다. 팔꿈치 근처 살점은 너덜너덜해졌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내는 놀라 화장실로 달려가 수건을 들고 나왔다. 찢어진 팔을 조심스레 감싸며 수건을 눌렀고, 그 안으로 퍼지는 피를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출혈은 점차 줄어들었지만, 아내는 지체할 겨를이 없었다. 두툼한 자켓을 꺼내 입히고, 지갑과 휴대폰을 챙겨 병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채 1분도 안 되는 시간 안에 응급실로 향할 채비를 마쳤다.

이번이 세 번째 응급실 방문이었다. 앞선 두 번은 요로결석 때문이었고, 새벽 시간이라 대기 없이 바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이번엔 일요일 저녁 6시경. 비교적 혼잡한 시간이었지만  빠르게 응급처치를 요하는 사고라고 판단했는지 간호사의 확인을 받고 을 좋게 곧바로 1인실로 안내되었다. 잠시 대기하긴 했지만 병상이 금방 준비되어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의사는 식염수로 상처를 소독하고, 유리 파편을 하나씩 꺼냈다. 국소 마취 후 봉합에 들어갔는데, 상처 길이가 20cm는 족히 되었다. 수술이 제법 오래 걸렸다. 집사람은 곁에서 말없이 지켜보며 혹시 골절은 없는지 꼭 확인해달라고 당부했다.

수술을 마친 후 방사선실로 이동해 X-ray를 찍었다. 촬영은 금방 끝났지만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었다. 통증은 계속됐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 이럴 때 캐나다 의료 시스템의 속도가 느리게 다가온다. 응급 수술은 빠르게 진행되지만, 이후 과정은 생명이 위급하지 않으면 느긋한 속도다. 모두가 익숙한 듯 기다리며 불만 한 마디 없이 순서를 기다린다.

다행히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단순한 열상(찢어짐)이라 치료만 받으면 된다는 의사의 말에 집사람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고 직후, 살점 너머로 보였던 뼈를 보고 고개를 돌리던 집사람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친 건 나였지만, 놀란 건 집사람이었다.

병원을 나와 약을 타기 위해 근처 약국에 들렀다. 밤 9시가 넘은 시간이었고, 약국은 약사 1분이 근무하고 있는 까닭에 대기 인원으로 붐볐다. 약을 타기까지도 한 시간 가까이 걸렸다. 그렇게 밤 11시가 넘어서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캐나다 의료 시스템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응급 진료부터 수술까지는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되었지만, 그 이후는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진료비나 수술비는 단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수납 창구도 없고, 병원비 계산도 없었다. 이 모든 과정이 '공공의료 시스템'이라는 틀 안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랍고 감사한 일이다. 작년에 집사람이 손가락을 탈골당했을 때는 4~5시간 넘게 대기한 기억도 있는데, 이번엔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실밥은 2~3주 후에 제거할 예정이다. 문제는 오른쪽 팔꿈치라 젓가락질이 불가능하다. 요즘은 왼손으로 포크를 들고 밥을 먹는다. 한쪽 팔만 불편해도 일상이 얼마나 불편해지는지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건강했던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이제야 절감하게 된다.

수술 후 3일째 되는 오늘, 오른손으로 핸드폰을 고정하고 왼손가락으로 이 글을 써내려간다. 이런 환경에서도 글을 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처럼, 불편한 상황에서도 몸은 새로운 적응을 해나간다. 인간의 회복력과 적응력은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