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일과 산나물 향기 속에서 캐나다의 봄을 만나다

케일과 산나물 향기 속에서 캐나다의 봄을 만나다

도심 속 주택에 넓은 뜰이 있다. 그 뒤편으로는 농장 분위기를 풍기는 밭이 펼쳐져 있었다. 싱싱한 케일이 한가득 자라고 있었고, 한쪽 구석에는 소박하게 자란 쑥갓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 다른 한편은 언뜻 보기엔 빈밭처럼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작년에 경작했던 작물들의 마른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생명이 머물다 간 자리, 그 조용한 부산물들이 이 밭에서 흘러간 시간의 향기를 은은하게 풍기고 있었다.

이곳은 지인이 오래 알고 지내던 지인의 집이라고 한다. 나는 전날 팔을 다쳐 봉합 수술을 받았고, 다음 날인 오늘, 지인이 연락이 와서 같이 외출을 하여 이곳을 찾게 되었다. 지인은 가끔 이 넓은 마당을 자신의 마당처럼 사용해 자동차 수리를 한다고 했다. 오늘도 차에 생긴 흠집을 손보며 페인트 작업을 한다기에 특별한 일이 없어 바람이나 쐴 겸 따라나선 길이었다.

집주인아주머니는 “평수에 상관없이 농장에 들어가는 물값만 부담하고 밭을 자유롭게 경작해도 된다”라고 말씀하셨다. 주말농장처럼, 혹은 취미 삼아 텃밭을 가꾸고 싶다면 누구나 환영이라며, 다만 “어느 정도 연세 있는 분들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조심스러운 조건도 덧붙이셨다. 소개로 누군가 함께 와도 좋고, 혼자 와서 조용히 밭을 돌봐도 된다고 했다.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이 있었고, 바비큐 파티도 가능한 구조였다. 가끔은 ‘이곳에서 힐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아내가 도시 출신이라 농촌 풍경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 아내의 의사를 먼저 물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단순한 텃밭 이상의 공간이었다. 한쪽에는 산나물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고, 잡초처럼 번식력이 강했다. 아주머니는 “먹을 만큼 가져가도 된다”며 비닐봉지를 하나 건네주시고는 산나물과 케일의 용도에 대해 정겹게 설명해 주셨다. 산나물은 무쳐 먹거나 부침 재료로도 좋고, 케일은 사과와 함께 믹서기에 갈아 마시면 건강에 좋다고 하셨다. 집사람이 가끔 그렇게 마셔서인지 케일은 낯설지 않은 조합이었다.

마트 야채 코너에서만 보던 케일을 실제 밭에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산나물도 마찬가지다. 봄이면 어머님이 산에서 산나물을 채취해 반찬을 만들어 주셨지만, 그 생김새를 이렇게 눈앞에서 제대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케일은 서양의 야채 같았고, 산나물은 단연 한국 토종의 정서를 닮아 있었다. 그 둘이 나란히 자라고 있는 밭을 바라보며, 캐나다 한복판에서 고향의 산과 들녘이 떠올랐다.

점심 무렵, 아주머니는 “차린 건 김치밖에 없다”며 식사를 권하셨다. 전날 다친 팔의 통증과 병원에서의 긴장감으로 입맛이 없었지만, 지인 혼자 들어가 먹게 할 수도 없고, 정중히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닐 듯해 함께 식탁에 앉았다.

식탁 위에는 김치 하나뿐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다양한 반찬이 차려져 있었다. 갖가지 나물, 더덕 무침, 김치와 깍두기, 국은 버섯과 곱창으로 푸짐하게 끓여져 있었다. 마치 어느 시골 마을의 한정식 집에 온 듯한 느낌이었다.

여기는 분명 캐나다 도심 한복판의 주택가인데도, 문을 열고 들어서자 펼쳐진 풍경은 한국의 어느 시골 마을 같았다. 정겨운 마당과 밭, 손맛이 가득한 밥상, 조용히 손님을 맞이하는 따뜻한 마음까지. 문득 ‘이렇게 한국적인 정서를 간직하고 계시다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으실까?’ 하는 궁금증이 스쳤다. 하지만 괜한 질문이 누가 될까 싶어 마음속에 묻어두었다.

어쩌면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이민 올 때만큼이나 쉽게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이 있을지 모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향은 더 멀어지고, 마음은 더 깊어지는 것일지도. 나이가 들수록 역이민은 더 어려워진다는 말도 떠올랐다.

집으로 돌아올 땐 산나물과 케일 한 봉지를 들고 왔다. 펼쳐놓으니 싱그러운 풀잎 향기가 방 안에 번졌다. 팔을 다친 전날의 아픔은 어느새 잊힌 듯했고, 봉합의 흔적도 이 따뜻한 외출 앞에선 잠시 뒷전이 되었다. 오늘 하루는, 고국의 봄 냄새와 시골집의 인정을 품은, 특별한 선물 같은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