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을 질투하는 사람들, 찬란한 순간 앞에서 우리가 멈춰서는 이유

4월을 질투하는 사람들, 찬란한 순간 앞에서 우리가 멈춰서는 이유

4윌의 시간이 멈추었으면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찰나의 순간이라도 붙잡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맑은 날이면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빛나 보인다. 하늘빛은 투명하고, 햇살은 따스하다. 꽃이 피어나고, 스쳐 가는 한 줌의 바람마저도 거칠지 않고 부드러워, 마치 고운 실크가 피부를 감싸는 듯한 느낌을 준다.

집 앞을 나서면 가장 먼저 반기는 건 벚꽃이다.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들이 온몸을 감싸듯 쏟아져 내릴 때, 마치 벚꽃의 세례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든다. 비가 잦은 '레인쿠버'라 불리는 캐나다 밴쿠버도, 4월만큼은 예외다. 유독 이 계절의 하늘은 맑고 청명하며, 어디를 보아도 투명한 빛으로 가득하다. 그러나 짧은 개화기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꽃이 만개한 시간은 너무도 짧고, 찬란한 순간일수록 더 빨리 사라지는 것 같다.

좋은 것은 왜 이리도 짧기만 한 걸까. 마치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는 말처럼, 아름다움은 오래 머물지 못하는 숙명을 지닌 것만 같다. 만약 꽃이 피어날 수 있다면 반드시 져야 한다면, 그 어떤 꽃이든 결국 미인박명의 운명을 타고난 셈이다. 그래서일까, 아름다운 것일수록 그 끝이 더욱 애틋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숲길 입구에서 나는 늘 인증 사진을 찍는다.아내는 가끔 묻는다.“왜 매번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사진을 찍어?”

나는 고개를 젓는다.똑같지 않다고, 매번 달랐다고.입고 있는 옷이 달랐고, 날짜도 달랐고, 날씨와 기후도 달랐고, 무엇보다 숲이 달랐다.그날의 나 역시, 그전과는 다른 사람이었다.

익숙한 풍경 속에서도 순간은 늘 새롭고, 그 안에서 나는 내 나름의 시간을 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사진 한 장으로 붙잡고 싶은 건, 그날의 공기와 감정, 그리고 나 자신일 것이다.

호수공원에 가면 가끔 인증 사진을 찍는다.꼭 찍어야겠다는 마음보다는, 어쩌면 문득 사진을 남기고 싶은 충동이 들거나, 몸과 마음의 컨디션이 괜찮을 때 카메라를 꺼내게 된다.

하지만 사진은 늘 마음처럼 나오지 않는다.여러 장을 연달아 찍어봐도, 건질 만한 한 장이 없다.어떤 포즈를 취해도 마음에 들지 않고, 표정도 어딘가 어색하게만 느껴진다.

젊었을 땐 달랐다.그때는 어떤 사진을 찍어도 대체로 만족했다.사진 속의 내가 자연스럽고, 빛났고, 무언가 생기가 있었다.그 시절의 내가 문득 그리워진다.

누군가 전선줄에 신발을 걸어두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외로이 하나뿐이던 신발이, 어느새 한 켤레가 더 늘어 났다.괜히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무심코 한 짓일 수도 있지만, 어쩐지 사연이 있을 것만 같다.

예전 어른들 말에, 남의 신발을 신으면 근심이 따라온다고 했다.이건 남의 신발은 아니겠지만, 어쩌면 자신의 걱정과 번민을 저 먼 하늘 어딘가로 던져버리고 싶었던 건 아닐까.근심을 떨쳐내려는 나름의 방식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해본다.그 방법이 과연 옳은 걸까.무언가 털어내고 싶었다면, 그렇게 매달기보다는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 더 나았을 텐데.
그 신발을 볼 때마다 어딘가 마음 한쪽이 쓸쓸해진다.

산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잠시 공원에 들렀다.그곳에서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이 축구 캠프에 참여하고 있었다.학교가 아닌, 민간 단체에서 주관한 행사인 듯 보였고, 학부모들도 함께 자리해 열띤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풍경이 낯설지 않았다.한국에 있을 때, 나 역시 여러 차례 이런 축구 캠프를 진행했었다.작년에도 일산에서 행사를 열었고, 익숙한 장면이 캐나다에서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 반가웠다.

지금 밴쿠버와 토론토에는 우리가 운영하는 축구팀이 네 팀이나 있다.
올해 7월, 우리도 또 하나의 캠프 행사를 계획 중이다.다시 한번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뜨거운 응원의 함성이 가득한 하루를 기대하며, 조용히 발걸음을 옮겼다.

야구 운동장 쪽에는 민들레가 가득 피어 있었다.꽃이라 불러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누군가의 시처럼, 가까이서 바라보니 더 예쁘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캐나다 이민 초창기 시절의 나는 달랐다.집 앞뒷마당에 핀 민들레는 ‘잡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굳이 뽑아야 할 대상이었고,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그 민들레가 꽃으로 보였다.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그 자태가, 참 아름다웠다. 익숙했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는 날, 마음도 한결 부드러워지는 것 같다.

공원 한쪽 편에 아이스크림 트럭이 들어섰다.이따금씩 공원이나 축제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지만, 오늘처럼 불쑥 나타난 아이스크림 트럭은 오랜만에 보는 장면이었다.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보던 아이스크림 수레가 문득 떠올랐다. 작고 낡은 수레였지만, 그 앞에 서면 세상 모든 단맛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았던 기억.

지금 이곳의 트럭은 훨씬 크고 세련됐지만, 아이들의 반응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았다.줄을 서며 어떤 맛을 고를지 고민하는 모습, 친구와 함께 먹으며 깔깔대는 웃음소리, 그리고 한 손엔 아이스크림을 들고 또 다른 손으로는 흘러내리지 않게 바삐 받아내는 모습까지.그 모습들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요즘은 마트에서 손쉽게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수 있지만, 트럭에서 사 먹는 맛은 또 다르다.
기다림이 있고, 설렘이 있고, 그 순간만의 풍경이 함께 녹아들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스크림 하나일 뿐인데,
오래된 기억을 꺼내주고, 공원의 하루를 조금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존재. 오늘 공원에서 만난 아이스크림 트럭은 그렇게 작은 기쁨 하나를 선물해주었다.

숲길에서 공원까지, 나를 걷다
이렇게 오늘도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의 시간이 흘렀다.숲길을 따라 호수공원을 돌아 공원까지 걷는 동안,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총12,000보, 1시간 45분. 거리로는 약 7.8km.
걷는 동안의 생각, 마주한 풍경들, 그리고 스쳐 지나간 감정들까지 모두 오늘이라는 하루에 담겼다.그냥 걷는 시간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다시 찾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