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성을 말하다, 오징어게임과 까치의 선택

무더운 여름이 시작되었다. 밤은 길고 햇살도 밤길이만큼 뜨겁고 무덥기만 하다. 무엇으로도 이 더위를 이겨낼 방법이 없을 것 같던 저녁, 마침 예고되어 있던 넷플릭스 <오징어게임 시즌3>의 방영이 시작되었다. 아내와 함께 보기 시작했는데, 그 긴장감과 몰입도는 생각보다 강했다. 드라마 속 게임은 단순한 놀이가 아닌, 실패하면 죽음으로 이어지는 극단의 룰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 흥미진진한 이야기 덕에 무기력하던 하루에 집중할 무언가를 찾은 듯했다.

나는 오랫동안 드라마와 거리를 두고 살아왔다. 하지만 요즘은 아내와 함께 드라마나 영화를 고르고 함께 시청하는 시간이 늘면서 자연스레 흥미가 되살아났다. 휴일이면 작은 루틴처럼 함께 작품을 보고, 몇 달 사이에 본 드라마만 해도 수십 년 치를 몰아본 기분이었다.

드라마 속 장면은 현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때로는 현실보다 더 본능적으로 다가온다. 오징어게임은 목숨과 돈을 맞바꾸는 게임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사회의 모순을 드러낸다. 잔인하면서도, 동시에 슬픈 이야기다. 그리고 시즌3에서 유독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다.

극한의 상황에서 한 엄마가 자신의 아들을 죽이는 장면이었다. 살아남기 위해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룰 앞에서, 동행한 아이를 살리기 위해 그녀는 결국 자신의 아들을 선택한다. 스스로 손으로 아들을 죽이고, 이어지는 죄책감 끝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다. 분명 드라마라는 걸 알지만, 그 장면은 보는 내내 불편하고 마음 한켠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죽음 앞에서도 사랑은 남아야 하지 않을까. 모성은 그런 상황에서도 작동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아니면 그 선택조차 모성이라고 불러야 할까. 드라마를 다 본 후에도 그 질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베란다에 나와 바람을 쐬며 서성이다가 정원 앞 나무의 무성한 잎 사이에서 무언가가 눈에 들어왔다. 까치 둥지였다. 몇 주 전부터 까치 한 마리가 나무 주변을 맴도는 걸 보긴 했지만, 정작 둥지를 확인한 건 그날이 처음이었다.

가까이서 바라보니 새끼 까마귀 한 마리가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리고 울고 있었다. 어미 까마귀는 옆 가지 위에서 날개를 부풀리고, 날을 세운 채 울고 있었다. 자신이 낳은 새끼를 지키려는 본능이 온몸으로 드러나 있었다. 그 울음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생존이 아니라 보호의 본능이 낳은 경고였다. 주변을 끊임없이 살피며 낯선 존재인 나를 경계하던 어미 까치의 몸짓은 마치 ‘다시 오지 마라’는 메시지처럼 느껴졌다.

어미 까마귀의 날개 아래 본능처럼 지켜지는 생명 모성의 실루엣

그 둥지엔 오로지 어미의 날갯짓만이 있었다. 생명을 지키려는 절박한 본능, 그 순간 나는 '모성'이라는 단어의 무게를 다시 떠올렸다.

나는 잠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까마귀의 시선을 그대로 마주했다. 몇 해 전, 골프장 클럽하우스 앞에서 까마귀에게 갑작스레 공격을 당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그때도 지금처럼 어딘가에서 새끼를 보호하려는 본능이 작동했을 것이다.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생명을 지키려는 본능. 그것이 까마귀라는 새에게도 있다면, 드라마 속 어머니의 선택은 또 어떤 의미일까. 다시금 되묻게 된다.

물론 드라마는 현실이 아니다. 극단적인 설정은 우리가 외면하거나 당연하게 여긴 가치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하지만 어미 까치의 눈빛을 본 그 순간, 드라마 속 장면은 허구를 넘어 현실처럼 생생하게 다가왔다.나는 어린 시절 ‘홍길동전’을 읽으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인물에게 열광했다. 현실 같지 않은 이야기였지만, 어쩌면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산타클로스가 굴뚝을 통해 선물을 주러 온다는 이야기를 믿었던 그 시절처럼, 불가능은 곧 꿈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기에 오히려 그런 장면들이 왜 그려졌는지,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묻게 된다.

<오징어게임 시즌3>는 우리에게 묻는다. 돈은 생명보다 소중한가. 사람은 어디까지 이기적일 수 있는가. 모성은 생존과 대립하는가. 드라마는 끝났지만, 그 질문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다.
나는 다시 까마귀 둥지를 올려다본다. 그 안에서 살아가려 애쓰는 새끼들과, 그들을 지키려는 어미의 절박한 날갯짓이 떠오른다. 드라마는 허구지만 우리가 매일 마주하는 모성은 현실이다.그 사이에서 나는 아직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다.
당신이라면, 그 어머니의 선택을 모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