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아침에는 김밥을 쌌다

오랜만에 김밥을 쌌다. 김밥에는 역시 우엉이 들어가야 제맛이다. 그동안 우엉 없이 다른 재료들로 김밥을 싸왔지만 뭔가 빠진 듯한 허전한 맛이 늘 남아 있었다.

오늘, 아내가 한인마트에서 우엉대를 사가지고 왔다. 껍질이 두껍고 거칠 줄 알았는데 채칼로 살살 겉껍질을 벗겨내니 생각보다 표면이 매끄럽게 잘 벗겨졌다. 채칼로 다시 한 번 더 다듬으니 더욱 매끈하고 깨끗해졌다. 그다음엔 길쭉하게 나무젓가락 모양으로 썰어 김밥 속에 넣기 좋게 손질했다. 의외로 껍질을 벗기는 작업보다 나무젓가락 모양으로 자르는 것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한참 동안 우엉을 손질하고 나니 손끝에는 흙냄새 같은 특유의 향이 배어 있었다. 이 냄새조차 반가웠다.

손질한 우엉은 아내가 간장 양념에 조려 깊은 맛을 냈다. 둥그렇고 깊숙한 원형의 프라이팬에서 한참을 보글보글 조려지는 모습은 김밥을 싸기 전부터 입맛을 자극했다.

간장에 조려낸 우엉 – 김밥 속에 들어갈 준비를 마친 모습

조려낸 우엉의 양은 수십 인분 김밥을 싸도 될 만큼 넉넉했다. 이 우엉을 넣어 이제 한동안은 제대로 된 김밥을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캐나다 한인마트에서는 이미 조려진 우엉을 소포장으로 팔지만 양이 적고 가격도 제법 나간다. 몇 줄 싸고 나면 금세 바닥이 난다. 그래서 우엉대가 마트에 입하되기만을 기다려왔다. 오늘은 2달러 조금 넘는 가격에 길쭉한 우엉대 4개를 구입할 수 있었고 그 기다림은 더욱 흐뭇한 만족으로 돌아왔다.

아침에 일찍 눈이 떠졌다. 쌀 항아리를 열어보니 며칠전에 사다 둔 쌀이 가득하다. 밥을 안치고 밥이 되는 동안 김밥 재료를 준비했다.

오늘은 김밥 세 줄을 쌌다. 우엉을 다른 재료보다 넉넉히 넣어 정성껏 만들었다. 한 줄은 도서관에 가져갈 간식으로, 두 줄은 우리 부부의 아침 식사로 준비했다. 평소 아내는 여러 종류의 과일을 썰어 요거트에 섞어 먹고 나는 빵과 커피로 간단히 아침을 해결하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엔 밥이 들어간 김밥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다. 평소와는 다른 식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은 단지 김밥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우엉이 들어간 김밥’이 먹고 싶었다. 김밥의 깊은 맛은 역시 우엉에서 온다. 달콤하면서도 짭조름한 간장 양념에 조려진 우엉은 쫄깃한 식감까지 더해져 김밥의 중심이 되는 재료임을 다시금 느꼈다.

오늘 아침에 만든 김밥, 우엉이 듬뿍 들어간 세 줄의 정성

밴쿠버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스시집이 참 많다. 담배가게만큼이나 흔하게 보일 정도다. 그곳에서는 김밥과 닮은 다양한 스시 롤들이 캐네디언들이나 이민자들에게 인기가 있다.언제부턴가  캐네디언들 사이에서도 스시는 이미 대중적인 음식이 됐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스시는 금방 물렸다. 한동안은 즐겨 먹었지만 지금은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반면, 김밥은 같은 재료로 만들어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익숙한 맛 같으면서도 먹을 때마다 새로운 맛이 느껴진다.

이곳에서는 김밥만 파는 전문점은 드물다. 먹고 싶을 땐 집에서 직접 만들어야 하고, 아니면 한인마트 분식 코너나 일부 분식집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번거로움에 그냥 포기해버릴 때도 있다.

김밥은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정성 들이지 않는 음식이 어디 있을까. 결국, 내가 좋아하고 가족이 좋아하는 음식을 직접 만들어 먹는 데에는 단순한 요리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다.

역시, 김밥에는 우엉이 들어가야 제맛이다. 오늘 아침, 그 익숙하고 정겨운 맛이 다시 내 입안에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