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먹었나?” 오늘도 내 기억과 실랑이 중입니다, 기억력을 높여줄 약은 있을까?

60대, 잊어버리는 삶 속에서 웃는 법을 배우다

이럴때에는 기억력 강화를 위한
약이 있었으면 좋겠다.


“기억하는 자만이 추억을 가질 수 있다. 추억하는 자만이 기억을 한다.”

젊은 시절, 이 말을 신조처럼 여기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말조차 희미해진다. 요즘은 그저, 기억이 사라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추억을 만들기보다, 오늘 하루의 기억을 잃지 않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아침이면 혈압약을 챙기고, 저녁이면 콜레스테롤 약을 먹는다. 그런데 문득,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헷갈린다. 먹은 것 같은데, 또 아닌 것 같고. 그런 날은 약병을 한참 들여다보다 결국은 약을 다시 챙긴다. 두 번 먹었을까 걱정이 되지만, 안 먹는 것보단 낫겠지 하는 심정이다.

기억하는 자만이 추억을 간직할수 있다.그래서 우리에겐 기억할 날들을 소중하고 값진 시간으로 기억해야 한다

얼마 전에는 핸드폰을 들고 거실로 갔다가 잠깐 내려놓고는 사라졌다. 그 자리에서 “내가 이걸 어디다 뒀지?” 한참을 뒤졌다. 결국 소파 옆 쿠션 밑에서 찾았다. 예전 같으면 절대 그랬을 리 없던 일인데, 요즘은 이런 일이 하루에도 몇 번씩 생긴다.

친한 지인은 냉장고에 핸드폰을 넣어놓고 찾느라 온 집안을 헤맸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듣고 처음엔 웃었지만, 요즘은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인다. 남의 얘기 같지 않으니까.

며칠 전에는 동서 부부와 함께 게낚시를 가려던 길에, 근처 맥도날드에 들렀다. 바로 며칠 전에 갔던 곳인데, 정작 입구를 못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고 처형은 “이 정도는 애교지” 하고 웃었다.

그 동서 부부는 얼마 전엔 목적지를 정해 놓고 나섰다가, 가는 길에 “우리가 어디 가는 거였지?” 하고 기억을 잃었다고 한다. 결국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한 명쯤은 기억할 법도 한데, 둘 다 까맣게 잊었다니, 웃긴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다.

건망증이란 녀석은 슬며시 다가와서, 삶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중요한 일을 잊는 게 아니라, 아주 사소한 것부터 서서히. 생각나는 듯하다가, 금세 사라지는 이름 하나, 단어 하나, 날짜 하나. 그게 사람을 가장 허탈하게 만든다.

혹시 이게 치매의 전조는 아닐까. 그런 걱정이 밀려올 때면, 스스로를 다독인다.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웃을 수 있으니까.”

사실, 치매가 무서운 건 사람이 사람을 잊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살아온 세월, 나를 이루던 이야기들이 하나둘 지워진다는 것. 나를 알고, 나를 기억하던 내가 사라진다는 건, 존재의 흔적까지 지워지는 일이다. 죽음보다 두려운 건,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다.

요즘은 “다시 오십대만 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면 지금처럼 자꾸 잊지는 않았을 텐데. 그런데 그런 내게 어떤 이는 “형님처럼만 60대가 되어도 좋겠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매번 지난 나이를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묻는다.
“약 먹었나? 핸드폰 어딨더라?”
이런 사소한 혼란 속에서도 웃으며 살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은 삶 아닐까.

지나온 나이를 그리워할 시간보다,
지금의 나를 안아주는 시간이 더 많아지길 바란다. 기억이 나를 놓쳐도, 나는 나를 놓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