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햇살 따라 공원에서 끓여 먹는 라면 한 그릇의 맛, 단연코 최고의 봄의 선물이다

봄 햇살 따라 공원에서 끓여 먹는 라면 한 그릇의 맛, 단연코 최고의 봄의 선물이다

4월의 하늘은 마치 구름 위에 떠 있는 세상 같다. 초록이 조금씩 기지개를 펴고, 햇살은 부드럽게 사람의 어깨를 두드린다. 겨울부터 초봄까지 그렇게도 지겹게 내리던 밴쿠버의 비가 며칠간 멈췄다. 그저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도 마음은 들뜬다. 그동안 얼마나 자주, 비가 잠깐 그치기만 하면 집 앞 산책길을 따라 부지런히 걷곤 했던가. 그러나 그마저도 여유롭지 못했다. 잠시 뒤 다시 멍게구름이 내려앉고, 예고 없이 비가 쏟아지기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런 날들이 지나고, 요즘은 햇살이 따뜻하게 내리쬔다. 봄의 가장자리에서 자연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찾아왔다. 아침부터 창밖 햇살이 하루 종일 포근할 것 같은 예감을 주었다. 이런 날씨는 묘하게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 아내가 먼저 그런 유혹을 탐했다. 갑자기 공원에 가서 라면이나 끓여 먹자고 한다. 예전 같았으면 내가 먼저 제안했을지도 모르는데, 이제는 서로 귀찮음을 핑계 삼아 밖에서 밥을 해 먹는 일이 줄어들었다.

한때는 삼겹살에 쌈채소, 간단한 반찬까지 싸서 공원으로 나가 캠핑처럼 즐기곤 했다. 연기를 피워가며 바비큐를 해먹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번거롭고 귀찮아졌다. 그렇게 한동안 우리는 자연과 가까운 삶을 놓고 지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바깥으로 식사를 하러 나섰다. 라면과 김치, 코펠과 버너를 간단히 챙기고 집 앞 산책길로 향했다. 늘 가는 길이지만 오늘따라 걸음이 가볍다. 걷다 보면 도로를 건너 작은 호수가 있는 공원이 나온다. 그 우측에는 여섯 개의 테이블이 놓인 소박한 취사 공간이 있다. 우리가 늘 앉던, 인적이 드문 자리는 이미 다른 팀이 먼저 와 연기를 피우며 바비큐를 굽고 있었다. 다행히 바로 옆 테이블이 비어 있었다.

버너에 불을 켜고, 코펠에 물을 올린다. 끓는 물에 라면을 넣고, 김치 한 통을 꺼내 뚜껑을 연다. 뭔가 특별한 재료를 넣지 않아도, 야외에서 먹는 라면은 그 자체로 충분하다. 계란을 풀지 않아도, 파를 썰어 넣지 않아도, 기막히게 맛있다. 자연이 양념을 보탠 덕분일까. 김치 한 점과 함께 후루룩 넘기는 면발은 속을 따뜻하게 데워준다.

예전엔 만두도 챙기고, 라면에 넣을 계란과 고추까지 준비해 갔었지만 오늘은 오히려 이 간단한 한 끼가 더 좋았다. 호들갑 떨지 않고, 소박하게 마주 앉아 먹는 라면. 이 작은 행위가 주는 위안과 따뜻함이 좋았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호수를 몇 바퀴 돌며 산책을 했다. 바람은 살짝 차가웠지만 기분은 나른하고 좋았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호수를 찾아 휴일을 즐기고, 호수 주변에는 낚시를 즐기는 강태공의 모습이 많이 눈에 들어온다.

오늘의 걸음 수는 약 만이천 보. 숫자로는 그저 산책일 뿐이지만, 마음에는 자연과 대화한 느낌이 고스란히 남았다. 건강과 자연, 그리고 소박한 맛을 함께 누린 하루. 대단하지 않아도, 특별하지 않아도, 이 하루는 꽤 근사했다. 사소하지만 충만했던 오늘의 기억은 오랫동안 마음속에 잔잔하게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