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어느집 베란다에 걸린 캐나다 국기를 보면서 나는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나라를 사랑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었다.오늘은 캐나다데이다

오늘은 한국보다 하루 늦은 7월 1일, 캐나다 데이(Canada Day)다. 그리고 화요일이다. 보통 캐나다의 기념일들은 ‘몇 번째 일요일’처럼 요일을 기준으로 지정되는데, 캐나다 데이만큼은 예외다.해마다 날짜가 정해진 유일한 기념일이다. 그래서 주말이 아닌 평일에 쉬는 날이라는 점도 이곳에선 나름 특별하게 느껴진다.

마치 생일처럼 날짜로 딱 정해져 있는 이 날을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우리가 생일을 요일에 맞춰 정할 수 없듯이, 캐나다 역시 건국일을 요일이 아닌 날짜로 정한 데엔 나름의 이유가 있것이다.어쩌면 하루를 쉬는 의미보다 하루를 기억하는 데에 더 큰 뜻이 있는 날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 날을 맞는 캐나다 사람들은 어떤 마음일까.그냥 하루 노는 날, 쉬는 날 정도로 여길 수도 있겠지만 내가 이민 와서 본 그들의 모습은 생각보다 달랐다.이 나라 사람들은 조용하지만 깊고 단단하게 자기 나라를 아끼고 있었다.

가장 먼저 놀랐던 건 국기였다.차에 국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처음엔 무슨 스포츠 경기가 있는 줄 알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그대로였다. 그제야 알게 되었다. 이들에게 국기는 특별한 날의 장식이 아니라, 일상에 녹아든 자부심과 애정의 표현이었다.

캐나다에서는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집 앞이나 베란다에 국기를 고정해 걸어두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베란다도 마찬가지였다. 창가나 벽에 국기가 단단히 고정돼 있었고 어떤 가정에서는 집 전체의 풍경처럼 자연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평범한 날에도 그렇게 걸려 있는 모습이 처음엔 낯설었다.한국에서는 국기를 아무 날에나 달지 않기 때문이다.국경일이나 현충일 같은 날에만 국기를 달고 기념일이 끝나면 바로 내리는 문화에 익숙해서였을 것이다.
그래서 그 모습이 처음엔 어색했고 신기했고  심지어는 이상하다고도 느껴졌다.

모자나 옷, 가방, 스티커, 심지어 강아지 옷에도 단풍잎이 들어 있었다.한때는 좀 유별나다 싶었고, 국기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것처럼 보여서 좋게 보지만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환경에 익숙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내 시선이 조금은 부드러워진 탓인지도 모른다.

캐나다 국기는 단풍잎 하나뿐인 단순한 문양인데도 오래 봐도 질리지 않고 묘하게 담백한 멋이 있다.국기에도 디자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걸 그때 처음 느꼈다.물론 그 단풍잎에는 역사와 의미도 담겨 있을 것이다.

캐나다는 이민자가 많은 나라다.우리 집엔 태국기도 없고 캐나다 국기도 없다.대신 집 안에는 탈 액자와 88올림픽 기념 티스푼 액자가 걸려 있다.현관과 안방에 그게 우리 가족에게는 태국기 이상의 의미로 자리 잡고 있어서 그렇게 걸어두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이민자 국가에서 모든 이민자들이 각자의 조국만을 사랑한다면 정작 캐나다는 누가 사랑해야 할까.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민자들이 이곳에서 살기로 선택한 이유 자체가 캐나다를 좋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은 일종의 애정이면서도 소속감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없듯이 나라에 대한 애정도 꼭 하나만 고를 필요는 없을 것이다.좋아하는 음식이 하나뿐이 아니듯이 좋아하는 색도, 음악도, 친구도 여러 명이듯이 사랑은 원래 그렇게 포괄적인 감정이다. 그리고 캐나다는 그런 사랑을 받아들이는 나라다. 많은 난민과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이 나라는
국기에 대한 마음조차 그 애정의 일부일지도 모르겠다.

오늘 캐나다 데이를 맞아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이민자로 살아가며 마주한 단풍잎과 국기가 처음엔 낯설었지만
이제는 익숙하다.사람은 적응해 가면서 모든 것을 스며들 듯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나도 이곳의 풍경과 사람들을 점점 그렇게 바라보게 되고 있다.

이 나라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정확히 말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내가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그리고 살아가며 배워가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오늘 단풍잎을 바라보며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