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녁에는 두부 김치 어떨까요,

저녁 식사의 사연 보다 식탁에 올라올 반찬의 사연이 더 정

저녁식사의 사연보다 식탁에 올라올 반찬의 사연이 더 정겹다

한 달 내내 비가 내렸다. 비로 인해 겨울이 더 깊어 가는 느낌과 함께 기나긴 겨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며칠 전부터 비가 멈추었다. 비가 멈춘 자리에는 몇 차례 눈이 내렸다. 날씨 또한 무섭게 영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국의 겨울 날씨에 비하면 밴쿠버 겨울 날씨는 늘 온유하다고만 생각해 왔었다. 올해는 이전 겨울의 온유함과는 달리 유난히도 추운 겨울 한파를 동반하고 있다.

 

추운 날에는 따뜻한 음식을 생각해 내게 된다. 우선은 따끈따끈 해야 하고, 좀 더 얼큰함까지 포함되면 어느 정도 겨울 음식으로는 합격점수에 도달한다. 따끈하다는 것은 주로 탕 종류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탕이 아니더라도 장소와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겨울이 되면 고스란히 추억 속에 묻혀 낭만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 있다. 길거리를 노점상 어묵 꼬치가 바로 그것이다.

 

어제는 모처럼 아내가 저녁에 어묵탕이 어떻게냐고 물어 왔다. 아내는 산책길이 추웠는지 어묵탕을 생각해 냈던 것 같다. 모처럼 날씨 덕분에 어묵탕으로 저녁을 먹게 되었다. 어묵과 함께 푹 삶아진 무 맛과 어묵 국물의 맛은 변한 것 없이 옛날의 그 맛, 그대로였다.

 

이탈리아 여행에서 돌아온 이후, 밥만 먹었다 하면 소화가 되질 않았다. 조금만 먹어도 속이 거북하고 꽉 찬 느낌이다. 할 수 없이  온라인을 통해 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예약 수신상태가 계속 읽지 않은 상태로 자리하고 있다. 방법을 찾다가 직접 병원을 찾아 예약을 하기로 했다. 근처 공원 산책까지 염두에 두고 겸사겸사 병원을 찾았다. 아내가 병원에 잠시 들려 예약을 하고 다시 차로 돌아왔다. 공원을 향해 출발하려는 순간, 의사 선생님이 아내에게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진료를 받고 가라고 하는 반가운 소식이다. 아내와 함께 진료실로 들어섰다.

"이왕 오셨으니 진료를 받고 가셔야지요, 며칠 후 또 번거롭게 오실 수 있나요, " 

말 한마디에 아팠던 병까지 전부 치유되는 느낌이다.

"어떤 것을 도와 드릴까요"

"참, 어머니는 건강하게 잘 계시죠"

진료 도중 아내에게 장모님의 성함과 함께 안부를 물어 오셨다. 아내는 순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작년 초에 운명하셨어요"

"아이고, 너무 빨리 운명하셨네요"

92세에 운명하신 장모님에게 빨리 운명하셨다는 표현은 의례적인 표현은 아니었다. 그 표현이 기분 좋아지는 위로임에는 분명했다. 우리 부부는 별도의 정기 검사까지 받게  해 주겠다는 소견서와 함께 약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빠져나왔다.(*검사 진행을 하는 2차 진료소 따로 있다)

 

병원 근처 공원을 찾았다. 산책로에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인적이 드물다. 며칠 전 내린 눈이 채 녹아내리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는 상태 때문인지도 모른다. 얼마만큼 산책로를  걷다 보면 작은 호수를 만나게 된다. 호수전체까지도 꽁꽁 얼어붙어 있다.

 

아내가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를 물어 온다. 매번 음식을 준비하는 것보다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하는지 음식 선택이 주부에게는 늘 고민거리로 작용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렇게 추운 날에는 평상시와는 좀 색다른 음식도 좋을 법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오늘 저녁 두부 김치는 어떨까요"

아내가 갑자기 저녁에 먹을 메뉴를 말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다. 저녁식사 반찬이기보다는 어쩌면 술안주에 가까울 수도 있다. 그중에서도 소주보다는 막걸리에 어울리는 안주인셈이다.

추운 날씨에 얼큰한 국물도 좋지만, 오랜만에

두부김치, 듣는 순간 두 가지를 다 얻어낸 느낌에 흔쾌히 OK 했다.

 

몇 달 전에 담근 김장김치가 제맛이 나기 시작했다. 김치 맛이 있어 언제 김치를 송송 썰어 잔치국수라도 한번 해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때마침 두부김치라고 하니 더할 나위 없이 맛있는 음식이 될 것 같다. 더불어 안주까지도, 김치볶음에 어묵을 같이 볶아냈다. 두부에 볶아낸 김치를 얹어 한입, 입에서 살살 녹는 맛이 난다.

 

두부 김치, 말 그대로 소박한 음식이다.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돈다, 무엇인가 별도의 음식을  준비하지 않아도 소화할 수 있는 음식이다. 사실, 많은 음식에 밀려 한동안 생각해 내지 못했었다.

 

그제는 삼겹살. 어제는 어묵탕, 오늘은 두부김치, 내일도 오늘처럼 미처 생각해 내지 못했던 음식을 생각해 내야 할 듯 한 의무감이 슬쩍 생겨난다.

 

우리의 평범한 일상은 값비싼 상차림의 음식보다는, 우리의 밥상에 단골이 되어 주었던 소박한 음식이 어떨 때에는 호사스러운 음식이 되어 갈 때가 있다.

 

생각만으로도 값진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은 우리 마음에 녹아내렸던 맛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도 평범한 일상을 담은 하루를 보냈다. 오늘 저녁 밥상에 차려진 소박한 두부 김치처럼, 식탁에도 평범한 음식과 함께 하루를 보냈다.